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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금보성아트센터

한글윷놀이

종료

전시 기간 2019.04.01 – 2019.04.10

회화
참여 작가 금보성
한글윷놀이 포스터

종료된 전시입니다. 아래 관람 정보는 전시 당시 기준입니다.

관람 시간
09:00am - 06:00pm
휴관일
일요일
관람료
성인 6,000원 초.중.고 4,000원 소인 3,000원
주소
서울 종로구 평창동 111-16
지도 보기
길찾기 (새 창)

전시 소개

*도비라

한글이라는 문자 조형을 나름의 방식으로 끊임없이 ‘해체’한다. 이는 단순한 파자破字나 형태적 분석이 아니라 오랜 사변적 탐색과 예술적 실현으로 행해온 능동성과 상징성을 지니는 것이다. 한글은 그 제자制字원리에서부터 발음기관을 본뜬 조형성은 물론 위민과 홍익, 음양오행의 이념성을 기반으로 하는, 이를테면 그 자체가 물질성과 정신성의 총체적 결합이라 할 수 있다.

근원으로 향하는 빛의 뿌리 - 〈금보성 ‘한글’ 개인전〉을 보고

류미야

청색이 태어났을 때 누가 기뻐서 소리쳤을까? - 파블로 네루다, 『질문의 책』 중

빛과 어둠이 그린 그림 빛을 생각하는 사람은 어둠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빛의 뿌리는 어둠이어서, 그 심연으로부터 벋어 나온 뿌리는 필연적으로 빛을 향하기 때문이다. 어둠의 전모를 밝히는 유일한 길은 어둠을 철저히 들여다보고, 제대로 간파하는 것이다. 그럴 때 캄캄한 시간의 밑바닥으로 가라앉으며 사라지는 듯 보이던 과거는 가볍게 빛의 입자들로 되살아나 대기 중으로 떠오른다. 산란하는 빛이 산란産卵(한 색의 알들. 그 투명하고 풍요로운 빛의 알갱이들은 시간을 관통하며 미증유의 풍경을 낳기도 하고, 어떤 거대한 정신이 되기도 한다. 일명 ‘검은 그림’으로 유명한 프란시스코 데 고야(Francisco Jose de Goya y Lucientes, 1746-1828)의 작품들 중 〈화실에서의 자화상〉이 문득 떠오른다. 이는 스페인 전통 복식을 차려입은 고야가 자신의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며 눈은 정면을 향하고 있는 그림이다. 그의 등 뒤에서 스민 빛은 그 발아래 어둠으로 깔리고 바닥을 알 수 없는 배경이 되어 화면 속의 그를 붙들어 세워놓는다. 여기서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그의 시선이다. 그가 초점을 맞춰 바라보는 대상이 그가 지금 화폭에 담고 있는 오브제인 동시에 그림 밖에서 그림 속을 들여다보는 관객(일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표현의 주체이자 객체, 나아가 수용의 대상이 되고 있는, 단순한 행위로서의 ‘그리기’가 아닌 행위를 통해 ‘말하기’를 수행하는 자로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뒤엉켜 색을 만들거나 지우는 빛처럼 삶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니까, 하는 새삼스런 깨달음과 함께 ‘표현하는 자’로서의 예술가의 지점을 생각해보게 된다. 고야는 자신의 ‘검은 그림’ 속의 검은빛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해 어떤 경우 검정 잉크로 밑 작업을 했다고 한다. 하나의 검은색과 다른 검은색이 대체 가능한 것일까? 분별없어 보이는 이 세계지만, 그러나 그늘과 암흑이 어떻게 다르고 빛과 어둠은 어떻게 같을 수 있는지를 아는 일은 삶 자체만큼이나 중요할 것이다. 사물과 군상의 수많은 다양한 빛깔과 표정을 통해 생의 참모습은 드러나고, 그 같음과 다름의 간격이 발견되는 곳에서 인간적 의미는 발생할 것이다.

색채는 아직 명명되지 않았다. - 자크 데리다

해체, 어울림, 그리고 한글 그렇다면 세계의 실체는 어떻게 드러나며, 또 알 수 있는가. 자동차의 메커니즘을 아는 데 낱낱의 부품을 뜯어보는 일이 주효한 것처럼, 그 총체적 결론이 무無로 돌아갈지라도 생의 진상을 구석구석 정밀하게 헤아려보는 일은 매우 중요할 것이다. 그런 연후에라야 각각의 사건과 사실들이 가리키는 삶의 이정표는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 말하자면 이번 금보성 작가의 작품전을 통해서도 그의 예술이 표현하고 지향하는 구체적이거나 근원적인 어떤 지점들에 대해 가늠할 수 있었다. 그는 그간 이어온 일련의 작업 속에서 한글이라는 문자 조형을 나름의 방식으로 끊임없이 ‘해체’한다. 이는 단순한 파자破字나 형태적 분석이 아니라 오랜 사변적 탐색과 예술적 실현으로 행해온 능동성과 상징성을 지니는 것이다. 한글은 그 제자制字원리에서부터 발음기관을 본뜬 조형성은 물론 위민과 홍익, 음양오행의 이념성을 기반으로 하는, 이를테면 그 자체가 물질성과 정신성의 총체적 결합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가 예술적 조리개를 맞추고 바라보는 대상, 즉 한글과 그에 대한 천착은 단순한 시각적 예술 작업으로서의 표현이 아닌, 말하자면 고야가 일련의 ‘검은 그림’ 연작을 통해 전쟁과 변혁의 불안정한 시대 속에서 자신의 거대한 주제를 완성해간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또 한 가지 특기할 만한 것은 그런 그가 해체와 함께 작업의 주요 테제로 삼는 것이 ‘어울림’이라는 것이다. 그는 색들의 배합과 조화, 즉 배색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 이는 음악에서 협화음과 불협화음이 동시에 구성적 기능을 발휘하듯 진정한 해체가 궁극적으로 가닿을 지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들 속에는 해체되어 나름의 방식으로 구성된 한글의 수많은 이형들이 서로 공명한다. 평면과 입체로 재구성된 자모들이 서로 길항하고 조화하는 가운데 어떤 화음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단어와 조사가 결합하고 문장과 문장이 결합하여 무궁무진한 의미와 음상을 빚어내듯, 해체된 말들은 새롭게 창조되며 의미 공간을 열어나간다. 서른네 성상星霜의 짧지 않은 세월 동안 ‘한글’이라는 테마에 그가 매달려온 사실은 작업을 통해 그가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은 물론 그 자신의 예술적 무의식, 뿌리의식을 잘 보여주는 것이리라. 이는 고교 3학년 때 시인으로 등단한 그가 이듬해(1985) 첫 시집 출간과 함께 첫 개인전을 열었으며, 이후 그 둘의 길을 병행해오고 있음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시인이자 화가인 그에게 한글이란 색채의 다양한 표정을 가능케 하는 언어이자 정신일 것이기 때문이다.

뿌리가 향하는 곳 그의 고된 작업이 향하는 뿌리는 어디인가. 고뇌하는 인간의 전형인 파우스트를 탄생시킨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그의 역작 『색채론』에서 정서와 도덕성, 상징성을 가진 ‘색채’의 고찰을 통해 총체적 삶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였다. 말하자면 삶의 구체로서 드러나는 이 세계의 색과 이미지는 단순한 현상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의 근원으로 향하는 어떤 통로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나름의 결론일 것이다. 또 바슐라르의 “인간적인 일체의 것은 로고스[말]”라는 말은 ‘인간 존재론’에 대한 매우 중요한 암시를 우리에게 던진다. 그렇다면 한 인간이 그의 정수로 구현해내는 특징적 예술세계의 양상은 그의 언어인 동시에 그라는 존재 자체를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현상으로서의 색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미적이지만, 그 원천에 생명을 살고 죽게 하는 빛의 다양한 파장의 산물로서 존재함을 인식할 때 새삼 놀라움을 느끼게 된다. 그것을 해체하고 결합하는 것, 그 오묘한 질감의 차이를 실현하고 또 추구하는 인간의 행위는 결국 근원에 가 닿고자하는 끊임없는 인간의 몸부림이며 신의 거소居所 앞에 가지런히 손을 모으는 행위와도 같다. 뿐만 아니라 한 민족의 생사고락과 함께하는 언어 기호의 예술적 실현에 온 생을 몰두하는 일까지, 금보성 작가가 그간 지나온 예술적 여정은 존 버니언의 그 천로역정天路歷程을 떠올리게 한다. 창조가 철학을 동반하게 될 때 그 뿌리는 깊어진다. 뿌리의 빛을 찾아 거슬러 오르다 끝내 스스로 빛의 뿌리가 되는 이들이 있다. 그가 뿌리는 빛의 낟알들과 그 수고의 여정을 시간은 기억할 것이다. 말을 짓는 시인으로서의 그는 다시 붓을 잡은 화가로 자신의 말들을 기어이, 지워낸다. 광대무변의 캔버스 위에서 꿈꾸는 빛들, 쪼개지고 어울리며 당신을 향해 건너오는 그 침묵의 외침에 고요히 귀 기울여볼 일이다.

류미야 2015년 『유심』 시조 등단. 시집 『눈먼 말의 해변』.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창과 초빙교수.

우리민족에게 한(恨)이란 몹시 원망스럽고 억울하게 응어린 진 마음인데, 원한의 대상은 자신보다 능력 있는 자들에게 피해를 입어 생긴 것이 많다. 억울함과 누명을 벗지 못하면 한이 된다. 반대로 흥(興)이란 재미나고 즐거운 일이다. 흥(興)은 지방의 생활과 풍속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근본적으로 恨을 푸는 행위이다. 예를 들어 흥에는 굿. 풍물. 인형극 따위의 여흥이나 감흥이 주는 전통적인 놀이가 많다. 개인의 신앙. 습관. 전설. 기술. 전승. 문화의 성취감으로 흥을 돋우기도 한다.

한(恨)은 곡(울음)으로 풀기도 하고 몸으로 (전통과 민속적인 씨름. 윷놀이 등)하는 놀이 문화가 농경사회에 정착되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여행. 음식. 스포츠. 등산. 교육을 통해 한에서 벗어나고 심리학 또는 의학적 치료도 발전되긴 하였으나 토템적 기복신앙인 굿이나 무속에 힘을 빌리기도 하고 종교 행위가 한을 치유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한과 흥의 궁극의 목적은 생명과 행복이다. 저의 작업도 한과 흥에 관심을 가졌다. 생명과 치유를 위해 민속적인 윷놀이를 소통의 마당처럼 용서와 나눔, 상생의 미학을 접목했다.

우리민족 윷놀이가 단순한 놀이 문화지만 기원의 의지가 깔려 있다. 윷판은 농토이고 윷말을 던져 풍년을 기원하는 놀이 문화지만 [증경지] 김문표는 윷판 중앙의 방표는 북극성이고 윷판의 둥근 모양은 하늘, 그 안의 모난 것은 땅. 윷판의 네 점과 중점을 주역의 오행이며, 윷판에 춘분 하지 추분 동지의 좌표와 윷 패에는 돼지 개 양 소 말로 풍년을 기원하는 의지가 담겨 있다. 윷놀이와 유사한 점술적인 방법으로 쌀 점과 동전 점도 던지는 윷 같은 행위로 개인이나 국가 간의 변화를 예측하긴 하나 점괘가 잘 못 나올 수 있다.

나에게 있어 소리글자 한글은 눈에 보이지 않은 윷 패이다. 개인의 한을 기억에서 삭제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인 흥을 업그레이 하여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바람이다. 사람마다 태어난 목적과 사명이 있는데 그것을 아름답게 사용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주역은 개인의 생년월일로 운명을 짊어져야 하지만, 저는 마음속 지정한 글자 [사랑. 행복. 성공. 감사. 축복 등] 떨어진 모양대로 그림을 그립니다. 한글 윷놀이도 현대회화로서 개념을 정리하여 현대회화 키워드를 부여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사람들의 행복이다. 건강하게 신명나게 살아가도록 하는 윷을 던지는 것이 기도이다. ■ 금보성

전시장 정보

금보성아트센터

공간 운영
11:00 – 18:00
정기 휴관
일요일
전시장 문의
02-396-8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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