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귀하고 고귀한 Ⅳ》
전북도립미술관
전시 기간 2026.07.10 — 11.08 ·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전시장 교동미술관
전시 기간 2024.04.16 – 2024.04.28
기획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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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홈페이지 바로가기 (새 창)예술은 일종의 노동과도 같은 행위이다. 노동의 본질은 ‘땀’이며 예술 활동을 통한 ‘땀’은 명상과 수행으로 환원된다. 노동으로 서체를 변환시켜 우연하고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선은 불교의 수행적 의미를 가진 ‘선(禪)’과 석도의 일획론一劃論에서 ‘한번 그음’을 의미하는 ‘선(線)’으로 표현했다. 서지를 쌓아 화면의 공간을 채우고 비우는, 일종의 묵언수행(默言修行)과 같은 반복적인 노동 행위를 함으로써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선(線)과 불교적 의미의 선(禪)을 수행으로 성찰해 보고자 한다. - 서정민 작가노트 중에서
서정민(b.1961)은 ‘선’에 대한 탐구를 기반으로 작은 한지말이 단위를 수없이 모아 거대한 크기의 화면을 통해 동양적 사유를 드러내는 작가이다. 서양화에서 시작하였으나 드로잉을 통해 ‘선’을 탐구하게 되었고, 부드러우면서도 질긴 한지의 특성에서 우리 민족성을 발견하면서 한지의 물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한다. 그는 작가 주체의 선 긋기를 탈피하고, 서예가들의 정신성을 담기 위한 노력의 흔적인 습작 한지를 수집하고 수많은 작은 한지 말이들을 통해 우연히 만들어진 무작위의 선들을 표현한다. 여기서 우리는 인위적인 인간의 욕심을 덜어내고, 본연 그대로의 자연을 받아들이며 자연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한지를 말고, 자르고, 붙이는 등의 일련의 반복적인 행위는 선이 되고, 무한한 시간과 땀이 축적되어 하나의 작품이 된다.
궤적(軌跡)1)의 사전적 정의는 ‘수레바퀴가 지나간 자국’이라는, 대상의 움직임 후에 알 수 있는 흔적을 일컫는 직접적인 의미와 ‘어떠한 일을 이루어온 과정이나 흔적’이라는 비유적인 의미를 모두 가진다. 대지 위 보리밭의 움직임을 통해 보이지 않는 ‘바람’의 존재를 알 수 있듯, 인위를 가하지 않은 우연한 선은 작가 내면의 정신성을 표상한다. 서정민은 ‘선’으로부터 시작하여 대표작인 <선들의 여행>을 포함하여 <선들의 합창>, <무심>, <함성>, <인연> 등을 거쳐 <선>에 이르기까지 20여년간 ‘선’을 향한 탐구에만 오롯이 집중했다. 작가 스스로도 ‘노동’이나 ‘수행’에 비유할 정도로 온전히 작가 혼자만의 땀과 시간일 것이지만, 한지 말이가 축적되어 만들어진 반복적인 선들을 관람자는 지금 여기서 마주할 수 있게 된다. 1) 1. 수레바퀴가 지나간 자국이라는 뜻으로, 물체가 움직이면서 남긴 움직임을 알 수 있는 자국이나 자 취를 이르는 말. 2. 어떠한 일을 이루어 온 과정이나 흔적. 3. 어떤 일정한 성질을 가진 점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도형. 주로 곡선이다.
한편, ‘고리’, ‘(원형의) 밧줄’이라는 뜻의 ‘LOOP’는 처음과 끝이 연결되어 무한 반복되는 원의 성질을 연상시키는 단어로, ‘타임 루프(TIME LOOP)’2)라는 말에도 쓰인다. 문장이 담긴 한지는 서정민의 작품에서 선이 된다. 사유와 말은 글이 되어 형상으로 나타나고, 대표적인 표의 문자 중 하나인 한자는 다시 추상 화면을 이루는 선이 되어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다. 또한, 노자는 대립되는 이항들이 서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ㅅㅐ끼줄로 비유함으로써 상생을 이야기하였다. 이원화된 사고로 구분하는 것들은 여기와 저기, 주체와 대상, 전통과 현대와 같이 경계 짓지만, 마침내 아래와 위, 무와 유의 경계를 넘어서면 사유의 무한한 확장으로 이어진다. 2)시간을 뜻하는 타임(TIME)과 고리를 뜻하는 루프(LOOP)가 합쳐진 말로,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이야기에서 등장인물이 일정한 시간을 계속해서 반복하며 겪는 경험 및 상황을 가리킨다.
'하나'라는 것은 그 위는 밝지가 않고, 그 아래는 어둡지가 않다. ㅅㅐ끼줄처럼 두 가닥으로 꼬여 있어 개념화할 수가 없으며, 아무 것도 없는 곳으로 돌아간다.
이것을 형상 없는 형상이라 하며, 아무 것도 없는 모습이라 한다.
앞에서 맞이해 보지만 그 머리가 보이지 않고, 뒤에서 따라가 보지만 그 뒷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 최진석, 「열넷째 장」,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소나무, 2001)
여행은 돌아올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림의 기본인 ‘선’에 대한 탐구, 우리 재료 한지의 발견, 사고의 바탕을 이루는 동양 사상에 대한 고찰, 이 모든 것은 근본에 대한 사유에서 시작한다. 끊임 없는 ‘선’에 대한 탐구가 돌고 돌아 다시 근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서예원에서 “먹빛을 머금은 가느다란 선”들이 수놓인 한지를 우연히 발견해 낸 것이 지금의 <선>이 되었듯, 서정민의 작업에서 우리는 선과 한지를 재발견할지도 모른다.
교동미술관 학예연구원 이순주
(출처 = 교동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