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마미술관] 기념에서 풍경으로 전시 포스터](/_next/image?url=https%3A%2F%2Fmedia.art-map.co.kr%2Fart-map%2Fpublic%2Fupload%2F2026%2F10%2Fexhibition%2F4b822b933ebf1beef7aaf5d7306d4d42.png&w=3840&q=75)
[소마미술관] 기념에서 풍경으로
소마미술관
전시 기간 2026.10.17 — 2027.02.14 · 서울특별시 송파구
전시장 더 윌로
전시 기간 2025.05.24 – 2025.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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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홈페이지 바로가기 (새 창)* 전시 소개
로와정 개인전 《어제의 놀라움》이 2025년 5월 24일 토요일부터 6월 22일 일요일까지 더 윌로(The WilloW)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관계와 상호작용, 기호와 유희, 무게와 가벼움 사이의 긴장을 섬세하게 직조하며, 관객에게 오늘날의 ‘나’와 또 다른 ‘나’(타자)의 관계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오늘날 우리는 ‘나’를 세우고 표명하는 데 몰두하는 사회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보다 견고해지는 ‘나’가 있는 반면, 또 다른 ‘나’인 타자와의 관계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로와정 개인전 《어제의 놀라움》은 이러한 시대적 정서 속에 관계의 불안정성과 연결의 불/가능성을 탐구하는 전시다. 로와정은 이분법적 구조의 전복을 통한 관계의 연결 불/가능성을 제안한다.
로와정(노윤희, 정현석)은 두 명의 개별적 주체가 하나의 이름으로 활동해온 아티스트 듀오로, 이들은 지난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둘 이상의 주체가 만드는 긴장, 충돌, 설득의 과정을 예술적 실천의 동력으로 삼아왔다. 이번 전시에서 로와정은 명확한 지시를 유예하고, 기표-기의 체계에 틈을 내며, 기호, 이미지, 장치를 통해 의미의 지연과 이중적 유희를 발생시킨다. 나아가 전시를 관통하는 소재인 ‘전선’은 매개체, 지지체, 조형적 요소 등 다양한 기능을 횡단하며 모든 작품을 잇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주체/객체의 전복을 통한 관계 맺기와 감각의 윤리를 환기하며, 개인화되고 단절된 상황을 넘어 우리가 다층적 관계를 어떻게 다시 맺을 수 있을지를 묻는다.
《어제의 놀라움》은 순수한 놀라움의 찰나를 붙잡는다. 전시는 단지 ‘모든 것이 빛난다’는 낙관적 시선을 제시하기보다는, 빛나고 있는 것을 감지하려는 태도, 즉, 감응하는 주체의 감각과 윤리를 요청한다. 이 전시는 찰나를 붙잡고, 그 틈 사이로 잊힌 관계들, 이름 없는 존재들을 다시 호출하며, 관람객들로 하여금 ‘나’와 또 다른 ‘나’가 만나는 지형을 그려내도록 이끈다.
*전시 서문
「붙잡는 응시, 늘어뜨리는 몸짓, 뒤집는 웃음」
신재민
무수한 복수의 ‘나’가 존재한다. 자기 표명의 주체로서 ‘나’를 전면화하는 양상이 두드러지는 오늘날, ‘나’를 관계와 맥락 속에서 구성되고 변화하는 불완결한 존재로 이해하는 시도는 여전히 유효할 수 있는가? ‘나’의 독자성을 논하되, 다층적이고 불안정한 기호로서 ‘나’와 또 다른 ‘나’를 관계 짓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로와정의 작업을 말하는 데에 ‘관계’는 빠질 수 없는 요소이다. 15년 이상의 작업 활동 동안 ‘로와정’이라는 이름은 하나의 중성적 고유명사로 굳어졌으나, 태생적으로 로와정은 ‘로(노윤희)’와 ‘정(정현석)’이라는 두 개체로 이루어져 있다. 이때 필연적으로 각기 다른 감각을 지니고 결정을 내리는 둘 이상의 주체 간 관계성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 관계성은 기능적으로 역할을 구분한 분업의 형태가 아닌, 각자의 고유성을 유지한 채 함께 존재하려는 실천에서 비롯된, 로와정의 태생적 속성에서 작동하는 변증법적 긴장을 가리킨다. 하나의 사안을 둘러싼 상호 간 설득과 충돌의 과정을 포함하는 이들의 작업 방식은, 개인의 주관뿐만 아니라 둘 이상의 개체가 이루는 관계 속 긴장과 불협화음을 동력으로 삼아 실체를 얻은 결과물로 작업을 산출한다. 이러한 작업 방식을 토대로, 로와정은 하나의 이름을 공유하면서 독립된 감각을 유지하는 두 존재의 관계에서 출발해, 로와정과 그들 주변과의 관계, 나아가 중심과 주변의 위치를 규정짓고 경계와 위계질서를 만드는 이분법적 사고에 대한 질문으로 작업의 맥락을 확장해왔다. 둘이 결합된 가상의 개체에 ‘로와정’이라는 이름을 부여한 것과 달리, 로와정은 작업에서 지시의 명확성을 회피하고, 대상을 의도적으로 익명화하거나 무명화하여 ‘텅 빈 기호’로 만든다. 약속된 기호 체계에서 기표-기의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혼란시키는 이러한 방식은 로와정이 굳어진 구조를 비틀고 흔드는 전략이다. 익명성과 무명성의 전략은 차연(différance)의 상태를 만들며, 기호 체계를 해석의 유예 상태로 만든다. 이번 전시 《어제의 놀라움》에서도 이러한 전술은 여러 층위로 드러난다. 전쟁, 재난, 참사 이후에 남겨진 재의 이미지를 입은 카펫이 덮고 있는 익명의 형상(<언더 더 카펫>), 표면이 불규칙한 솜의 물성으로 인해 불분명하고 왜곡된 형태로 보여져 대상을 구체화하기 어려운 프로젝션 영상(<어제들>), 3D 프린팅으로 복제되어 동일한 형태로 반복되는 무명화된 손(<핸즈>), 본래적 기능에서 이탈한 안마기 위에 놓인 익명의 사물(<메시지>)은 모두가 대상과 의미 사이의 거리를 만들어낸다. 관람객은 의도적으로 비어진 기호의 자리를 통해 명확한 해석보다 판단이 지연된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로와정은 또한 형상의 가벼움을 통한 ‘이중적 유희’를 발생시키는 데 능하다. 이들의 작업은 대체로 조형적 부피가 크지 않으며, 질량감이 낮은 소재로 이루어져 있다. 예컨대 <언더 더 카펫>에서는 실제의 재가 아닌, 재의 표피적 이미지만을 입은 카펫이 익명의 덩어리를 덮고 있다. 이를 걷어내면 남는 것은 엉켜 붙은 전선 뭉치뿐이다. 로와정은 바로 이 형상적 가벼움과 그것이 지시하는 실제 사안의 무게 사이의 낙차에서 이차적 유희의 지점을 만들어낸다. 가벼움은 일견 피상적이고 유희적인 것으로 취급되지만, 그것이 지시하는 사건이 관람객에게 낯설지 않은 현실일 때 비틀린 웃음이 발생한다. 즉, 일상 속에서 화면을 통해 피상적으로 소비되고 대상화되었던 사건이 실제로 가벼운 이미지로 변용되어 공간에 놓여 있음을 목도할 때 말이다. 이중적 유희는 대상의 허구적 형상과 그것이 기입하는 실재 사이의 긴장 위에서 작동한다. 이러한 이중적 유희의 전략은 전시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보여진다.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난 방향으로 노동을 수행하는 안마기의 오류적 행위(<메시지>), 펌프가 다섯 대의 수조 각각에 장착되어 순차적으로 물을 공급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수위 변화가 없이 반복되는 순환 굴레(<고스트>), 표피의 내부가 오히려 표면으로 기능하며 보여짐의 역설을 드러내는 라이트박스(<튜브>), 그리고 동선에 놓여 필연적으로 단절이 발생하는 관계의 연결성(<한 숨 거리>)은 모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중적인 유희를 내포하고 있다. “사회는 문턱으로 이루어진 ‘마주침의 장(場)’2)”이라 할 때, 그 문턱을 경계로 고착시키는 이분법적 사고에 기인한 체계가 존재한다. 유희는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닿거나 다룰 수 없을 것처럼 거대하게 느껴지는 체계를 전복하고, 경계를 해체해 문턱을 넘는 전략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로와정이 텅 빈 기호와 이중적 유희의 전략으로 던지는 질문은 무엇인가? 이는 전시 《어제의 놀라움》의 전반을 감싸고 있는 전선으로 구체화된다. <한 숨 거리>부터 <튜브>까지를 연결하는 소재인 전선은 전력 수용체에 전기를 공급하거나(<어제들>, <메시지>, <고스트>, <튜브>, <한 숨 거리>, <샤이니 샤이니 샤이니>), 익명의 형상을 만드는 지지체로써 기능하거나(<언더 더 카펫>), 조형적 요소로서 전면에 드러나거나(<튜브>), 때로는 불필요하고 부차적인 장식으로 보인다(<핸즈>). 이처럼 전선은 각 작품 내에서 그 기능적·미학적 위상이 변화하며, 하나의 물질이 다양한 관계적 층위를 횡단하는 형태로 드러난다. 전선은 연결된 관계의 파편화된 단면을 표상하는 각각의 작품을 관계 짓는 요소로, ‘나’와 또 다른 ‘나’의 관계, 그리고 복수의 관계들이 서로 무관하거나 단절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이는 개인의 문제로 축소되곤 했던 관계의 단면에서 드러나는 문제들을 구조적 맥락에서 되짚는 동시에, “정해진 일방향성 없이 나열, 분해, 반복, 교차되는 단면3)”을 엮어냄에 따라 한 개인 또는 하나의 관계가 맺는 위치의 전환 가능성, 그 위상 변화의 감각을 환기한다.
나는 이러한 관계 맺음이 결코 시혜적인 태도에서 비롯되지 않는다는 전제를 설정해두길 제안한다. 발 플럼우드는 『악어의 눈』에서 악어의 먹이가 될 뻔한 자전적 경험을 통해, 포식자-피식자의 관계에서 인간이 언제나 포식자의 위치를 점유하는 것은 아님을 자각한다. 자신이 ‘먹이’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은, 정신/육체, 주체/객체, 인간/비인간, 문명/자연이라는 오랜 이원론적 구조를 넘어서, 나와 타자, 나아가 인간과 비인간 존재를 동일선상에 위치시킨다. 이러한 사고를 전제에 둠으로써 관계 맺기를 일방향적 베풂이나 시혜의 윤리로 환원하지 않고, 서로에 감응하는 감각의 윤리를 이끌어낸다. <샤이니 샤이니 샤이니>에서 조명을 받아 빛나는 문구 “모든 것들이 빛나는 건 아니라네. 하지만 빛나고 있는 것들은 모두가 그러하지(all things are not shining, but all the shining things are)4)”는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빛난다’라는 낙관적 시선만을 그리지 않는다. ‘빛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감각과 ‘발견하고자 하는’ 태도를 환기한다. 이러한 태도는 로와정의 지난 개인전 《눈길에도 두께와 밀도가 있다》(2024, 학고재)에서 ‘시선과 관심(eyes, attention)’을 훈련해야 할 필요를 논하던 지점과도 맞닿아있다5). 이때 시혜적이지 않음을 전제로 한 태도는 서로를 변화시키는 반응의 장으로서 관계 맺기의 조건이 된다. 《어제의 놀라움》이라는 제목에 대해선 “처음 겪는 일에 대한 반응으로 놀라움을 느낀다. 순수한 놀라움의 시간이 지난 후에 그것을 느끼는 주체에 따라 그 방향성이 정해진다. ‘어제의 놀라움’은 찰나인 놀라움의 순간에 대한 것이다6)”라는 로와정의 말을 빌려 말해보고자 한다.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기를 추구하는 개발 신화는 놀라움의 순간이 연속적으로 창발하도록 만든다. 그 순수한 놀라움의 순간이 지나간 이후, 놀라움의 방향은 그 순간을 만들어낸 인간 주체에 의해 정해진다. 멈추어볼 때다. 로와정의 작업은 바로 그 멈춤을 요청한다. 찰나의 순간을 붙잡고 지연시켜보자. 방향에서 비껴간 존재들, 이름 없는 존재들, 분절된 관계 속 지워진 존재들을 그 틈 사이로 다시 호명하며, 찰나인 놀라움의 순간이 ‘나’가 아닌 또 다른 ‘나’와 관계하는 지형을 그려본다. 그로부터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선택하기’를 행할 수도 있다.
*전시 크레딧
작가: 로와정
기획: 신재민
그래픽 디자인: 모조산업(도한결)
제작 도움: 백정기 <핸즈>, 장기욱 <튜브>
설치 도움: 민덕기, 장기욱
미디어 설치: 올미디어
번역: 콜린 모엣
사진: CJYART STUDIO(조준용)
주최/주관: 로와정(노윤희, 정현석), 더 윌로(점과선 프레스)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