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마미술관] 기념에서 풍경으로 전시 포스터](/_next/image?url=https%3A%2F%2Fmedia.art-map.co.kr%2Fart-map%2Fpublic%2Fupload%2F2026%2F10%2Fexhibition%2F4b822b933ebf1beef7aaf5d7306d4d42.png&w=3840&q=75)
[소마미술관] 기념에서 풍경으로
소마미술관
전시 기간 2026.10.17 — 2027.02.14 · 서울특별시 송파구
전시장 비움갤러리
전시 기간 2021.08.03 – 2021.08.18
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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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홈페이지 바로가기 (새 창)새로운 원근법
본래 원근법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기법이었다. 다들 알다시피 소실점의 발견으로 시각예술계는 과학적으로 그리는 법을 보편화했고, 그것을 신의 영역에서 인간의 영역으로 표현의 주체를 가져오는 강력한 증거로 교환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인간 중심의 생각이라 믿었던 것이 사실은 특정 이데올로기 또는 권력 있는 개인 중심인 경우가 많았다. 누구를 위한 사실인지 혼란스러운 시간을통과하며 많은 생각의 주체는 소실의 첨단(尖端)으로 소멸된 역사가 있음을 우리는 배웠거나 혹은 지금도 경험하고 있다. 우리는 과학적 사고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 아집 앞에서 진정한 생각의 주체가 되기 위해 나름 노력하지만 세상을 새롭게 보는 방법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2인전이 제일 어렵다.”는 말이 있다. 아마 시각예술을 하는 이라면 거의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얼핏 생각했을 때에는 개인전 같은 그룹전, 물리적으로나 재정적으로 부담을 줄이면서 아트 페어 부스보다는 전시의 형태라는 점에서 괜찮은 한 줄을 만들 것 같지만, 그런 나이브한 생각은 바로 패착이 될 수 있다. 2인전은 어떤 전시 형태보다도 예민한 작업이다. 우정이나 유사 장르 분파 따위를 확인하는 것이 아닌, 분명한 주제의식과 전시 준비 자체가 두 작가 모두에게 새로운 도전과 성장을 줄 것이라는 기대가 거의 확신에 가까울 때 시도할 수 있는 일종의 모험이기도 하다. 필자는 그간 허탈한, 또는 불쾌한 표정을 애써 감추며 “이번에 많이 배웠다.”는 씁쓸한 말 한마디 남기고 전시 철수를 하던 작가들을 왕왕 봐왔다. 이는 개별 작품이 모자라서도, 그들이 인격적 결격이 있어서도 아닌, 그만큼 주제의 궁합과 기운의 조합이 두 명이라는 에너지의 주체 사이에 정확한 박빙으로 존재하기란 어렵다는 현실을 말해준다.
이렇게 볼 때, 1년 가까이 분명한 호흡과 소통, 그리고 각자의 도전으로 준비해 온 서유영, 임수빈의 이번 2인전은 두 작가뿐만 아니라 감상자, 컬렉터에게도 얻어갈 것이 많은 현장이라고 힘주어 이야기하고 싶다. 전공도, 성별도, 삶의 궤적도 서로 많이 다른 둘은 적당한 거리에서 각자가 어떤 생각의 주체인지를 이야기하고 진정한 공동 작업(collaboration)이 되기 위해 대화하고 연구했다. 그들에게는 어떤 첨단에 대한 갈망 같은 것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시작점에 대한 흥미와 정체 탐구에 대한 열정만 가득해보였다. 그것은 아이를 낳은 부모가 그 아이에게 세상의 목표를 주어주는 배신이 일어나기 전의 순수한 사랑의 모습과 유사했다. 그러므로 이들은 ‘생명’을 이야기할 자격이 되는 예술적 조합이라고 감히 평하고 싶다. 이들의 작업에는 낯간지러운 교화나 교육의 목표를 드러내지 않는 대신 어떤 모티브가 우리에게 자유로운 생각의 대화로서 생명력을 갖는지, 그리고 그 작업은 또한 그 자체로 새로운 모티브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교조적이지 않으면서 여유로운 서유영의 작업들은 정형화하지 않는 작품명들처럼 삶의 태도에 대해 속삭이며, 무거움 속에 위트가 있는 임수빈의 작업들은 자개라는 전통적 보석의 영롱함과 더불어 우리 시대가 원하는 새로운 시각 언어를 제시해주고 있다.
간략히 몇 작품을 살펴보자면, 서유영의 ‘Love impartially’는 그라데이션으로 보여줄 수 있는 다양성과 공존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녀의 그림을 대하게 되면 시력에 문제가 없어도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했다가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게 되곤 하는데, 아마도 원경과 근경이 평면적으로 공존하고 있기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단순한 행동 속에서 우리가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 이런 태도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그래서 “‘사회적 약자’라는 개념은 어쩌면 거창한 게 아니라, 생각이 조금다르다고, 환경이 달라서 발생하거나 처하게 되는 다양한 소수들임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작가의 말에서 우리는 치열한 계급적 논쟁에서 벗어나 서로를 위안할 수 있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의 여유를 찾게 된다. ‘부딪히고, 부서지고, 다시 이어지고’는 파도가 주는 인생에 대한 관조와 역동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전시시기인 여름의 시원한 느낌도 놓치지 않으려고 한 작가의 여유로운 마음을 마주할 수 있는 작업이다. 그리고 한자를 조금 바꾸어 역시 중의적인 표현을 보여준 ‘일상(一常)’은 무언가를 갈망하면서도 지금의 하루를 소중하게 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에 대해 임수빈은 연구작인 ‘만 개의 조각 그리고 여백’으로 화답한다. 이는 입체 위주로 작업을 해온 그간의 방식에서 조금 벗어나 평면 작업을 통해 이번 전시를 위해, 그리고 이번 전시가 계기가 되어 변화 또는 확장하는 양상을 잘 보여준다. 특히 묘사와 기법 측면에서 절대적인 물리적 시간을 쌓아올려야만 하는 이들의 작업들은 단순한 성실의 미덕을 넘어 미시가 모여 거시가 되고, 거시 속에 충실한 미시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바꾸어 말하면 거시가 모여 미시가 될 수 있다는 역설적 명제마저 생산해내고 있는 듯하다. 그렇기에 누구 하나가 ‘미시’를 맡고, 다른 한 사람이 ‘거시’를 맡는 기계적 분담이나 이분법적 차림새가 아닌, 같은 모티브에서 시작해 상이한 방식을 보여주는 이인(異人)*으로서 기능한다. 그들은 서로 다른 곳에서 왔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늘 그에 전제해 대화를 나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이방인(異邦人)의 굴레에서 벗어나 상호 협력자가 되었다.
그래서 이들과 작품으로, 언어로 대화를 하다보면 마치 전설의 미궁을 차용한 임수빈의 작품 ‘라비린토스Labyrinthos’처럼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어려운 매력을 느끼게 되는데,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필자는 시각이 사유를 지배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즉, 생각이 성실하고 작업이 좋은 작가가 제시하는 어떤 형상은 주제이기 이전에 하나의 작동 원리인 것이다. 즐겁고 주체적인 감상과 살아있는 도슨트를 위해 이들의 2인전을 최초에 추동한 공통의 모티브에 대해서는 여백으로 남겨두었다. 이 전시에서는 빽빽함 속에 숨통으로서 존재하는 여백 역시 무척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눈치 챌 것이다. 무책임하지 않은 선에서 두 작가는 즐거운 퀴즈를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벌집 구조라는 완벽함을 지향하면서도 그 안에 조금씩 이질감을 장치함으로써 타인을 보는 시선을 생각게 하는 서유영의 한 작품명 ‘당신의 오늘이 제일 예쁘다’는 우리에게 사회의 최소 단위는 ‘이인(二人/異人)’임을 상기하며, 그 경계에서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는지 말을 걸어준다고 하겠다. 서로가 서로에게 같은 방향을 본다는 강박으로 채워주려고, 채워달라고도 하지 않고 그저 새로운 원근법이 되어줄 수 있는 관계가 더 많아지기를 새삼 바라본다.
■글/ 배민영(예술평론가)
* 까뮈의 이방인(異邦人, L`etranger)을 당시의 탈식민주의 논쟁에 기대지 않고 본질적으로 다른 실존의 개념으로 읽기 위해서는 이인(異人)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고, 필자는 이에 동의하는 입장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인(異人)의 다른 의미로는‘재주가 신통하고 비범한 사람’도 있다는 사실.
(출처=비움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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