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마미술관] 기념에서 풍경으로 전시 포스터](/_next/image?url=https%3A%2F%2Fmedia.art-map.co.kr%2Fart-map%2Fpublic%2Fupload%2F2026%2F10%2Fexhibition%2F4b822b933ebf1beef7aaf5d7306d4d42.png&w=3840&q=75)
[소마미술관] 기념에서 풍경으로
소마미술관
전시 기간 2026.10.17 — 2027.02.14 · 서울특별시 송파구
전시장 신촌문화발전소
전시 기간 2021.08.12 – 2021.08.14
기획전
종료된 전시입니다. 아래 관람 정보는 전시 당시 기준입니다.
공식 홈페이지 바로가기 (새 창)‘죽음’을 떠올려보세요. 두려우신가요? 혹은 너무 먼 존재라는 생각에 무감각하신가요? 나의 죽음, 타인의 죽음, 그리고 무생물적인 존재의 죽음 그 이상까지. 카메랄트 여덟 번째 기획 전시<지금은 부재중이오니 메세지를 남겨주세요>는 ‘죽음’을 주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첫 번째 섹션에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죽음, 두 번째 섹션에서는 사회적 죽음을 표현하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섹션에서는 죽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합니다. 단편적인 시각에서 다소 어둡게만 느껴지던 ‘죽음’을 전시를 통해 다각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기회가 되시길 바랍니다.
김재윤 영화 같은 엔딩 (연작)
해피엔딩의 영화 속 주인공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원하던 바를 이뤄낸다. 해리는 더즐리 가족과 볼드모트에 의한 아동학대를 이겨내고, 토미는 독일군의 폭격에도 살아남아 영국 땅으로 귀환한다. 직장 내 괴롭힘과 과로에서 살아난 앤드리아, 여왕벌 무리의 따돌림을 극복한 케이디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정말 우리 사회는 해피엔딩 주인공들로만 이뤄져 있을까? 죽음이 발생하는 상황에서의 컬러 대비를 통해 영화가 은폐하는 어두운 진실, 사회적 가해자를 암시한다. 해피엔딩이 사라진 영화, 그 장면 주위에는 벼랑 끝으로 내몰린 죽음만이 자리할 뿐이다.
김정하 ___ was (t)here, ___ will be (t)here.
남은 자들은 그저 이곳에서 어딘가에 있을 그들을 회상한다. '그곳'은 '이곳'과 같은 공간일 지도, 꾸며낸 허상일지도, 어쩌면 이곳 또한 허상일 수 있음을. 지금 이곳에서 또는 어디인지 모를 그곳에서, 살고 또 죽은 우리들의 이야기.
박서영 기억과 망각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누군가’의 죽음들. 이 안타까운 죽음 속에는 사회 시스템의 이면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분노하고, 싸우고, 기억할 것을 다짐함에도 타인의 죽음은 기억의 벽 앞에서 부서진다. 흐려지는 기억과 흐르는 시간을 넘지 못해 결국 끝에 다다를 수 없는, 어쩌면 당연한 망각을 지금, 이 자리를 다시 생각한다. 기억의 벽을 넘고 넘어 사회 시스템의 견고함을 끝내 무너뜨릴 수 있기를.
박서현 蓄音 (모을 축 소리 음)
나이, 성별, 직업이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당신들의 삶과 죽음을 담았다. 우리는 같은 지구 안에 살지만, 우리의 세계는 모두 다르고 그렇기에 삶과 죽음 또한 그러하다. 닮은 구석이 있지만 또 다른, 다르지만 닮은 모양새의 이야기들을 통해 당신 속에 모아져 있는 소리에도 귀 기울여 보길 바라 본다.
손예형 Your sensibility
무엇이 이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을까? 사회적 시스템, 방관, 그리고 무책임한 언어들. 이 살인자들을 가감없이 적나라한 문자의 형태로 마주했을때, 우리가 가장 먼저 느끼게 될 감정은 과연 무엇일까. 어쩌면 조금 자극적일지 모를 이 언어들이 우리 속의 다양한 감정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우리 각자는 과연 어떤 대목에서 슬픔 혹은 분노를 느낄 것인가. 혹은 느끼지 않을 것인가. 관객들은 각자 다양한 상황의 사회적 타살에 대한 텍스트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이 제각각일 것이다. 누군가는 여성의 죽음에 분노하고, 누군가는 노동자의 죽음에 깊이 감정 이입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어린 아이의 죽음에 진정으로 가슴 아파 할 것이다. 또 어떤 상황에도 공감하지 못해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조금은 적나라할, 다양한 죽음을 묘사하는 말들을 통해 우리 안의 인권감수성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신예은 궤적
<궤적> 연작은 죽음을 맞이한 가상존재의 (삶의) 궤적을 방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누군가의 물건, 혹은 방은 그것이 움직이면서 남긴 자국이나 자취를 가장 잘 보여주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이 가상존재는 관객이 될수도, 내가 될수도, 혹은 우리 곁에 오랫동안 같이 있었던 존재가 될수도 있다. 이 가상존재가 대표성을 띄게 하기 위해 내가 눈으로 인식한 이미지가 회화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내가 떠올린 기억, 감성, 바라봤던 시선이 함께 용해되어 방 안은 재구성 된다. 떠나간 존재가 누구인지 유추할 수 있을만한 내러티브를 그림에 담는다.
안효진 (In)visible
죽음이 필연적임을 알지만 가까이 있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그 착각 속에서 인간은 불멸의 존재가 된다. 죽음을 인지하면서도 인지하지 못하는, 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잊지 말 것. 죽음은 항상 곁에 있다. 보이면서 보이지 않으면서.
이예원 구경꾼
사회적 타살의 타깃은 매우 가난하고, 드라마틱한 과거를 가진 사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당장 우리 주위에도 일상을 버티는 데에 버거움을 느끼고 사회적 소외를 실감하며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디어에서는 그러한 사람들의 죽음이 계속 보도되지만, 자신과 관련된 일이 아닌 이상 우리는 그저 죽음을 하나의 현상으로 ‘소비’한다. 죽음이 전시되고, 전시된 죽음은 많은 죽음들 중 안타깝지만 흔한 일로 치부되며, 우리는 그저 구경꾼으로만 남아있다.
인남홍 얄궂은 오브제
진부하게 들리겠지만, 결국 삶은 죽음으로 완성된다. 좋든 싫든, 사람들은 태어나자마자 임의로 놓인 여로 위를 걷는다. 또한 의식하든 아니든, 우린 모두 창작자의 자격을 가진다. 하지만 창작자들은 절대 삶을 계획한대로 완성할 수 없다. 삶은 인지불가능한 수천, 수만 겹의 나비효과로 둘러싸여있기 때문에, 작가들은 창작품의 형태를 짐작할 수는 있어도 확신할 수는 없다. 또한 작가들은 작품을 만들 순 있어도 감상할 수는 없다. 마침표를 찍는 순간, 아무것도 인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참으로 얄궂은 상관관계가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은 전시가 끝날 때까지 미완성이다. 이 작품이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 되어있으면 한다. 그러니 마음대로 형태를 변형해도 좋다.
지혜민 Dead celebrities (죽은 유명인사들)
돌고 돌다가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악수나 하이파이브 대신 자신의 옷 매무새를 정리하고 멋쩍은 듯 어깨를 으쓱인다.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이것이 내가 바라본 불가피한 풍경이고, 그와 그가 살아있는 한 이 풍경은 지속될 것이라고 답하겠다. 풍경 속의 이는 말이 없다. 그 심정도 아주 모르는 바는 아니다. 다만 한낱 죽음과 가까워진 장소에서 만난 두 사람은 어떤 대화를 어떻게 나눠야 할까? '물리적으로 행해지지는 않지만 상황과 사회적 분위기에 의해 조성되는 폭력에 집중'하여 이것이 사회적 타살에 기여하는 바를 회화 작품으로 드러내고 공유하고자 한다.
A의 전언
요즘 주어와 술어의 자리를 자주 혼동한다. 머릿속의 복잡한 상념을 메꾸기에 급급하다보니 결국의 종착점은 어디인가 막연해진다. 종착점에 대한 생각은 곧 삶의 끝의 지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했고, 에르빈 슈뢰딩거의 텍스트를 이용하여 ‘죽음’과 ‘삶’에 대해 인식, 삶 속 '자아'을 바라보는 자세를 재조명 해보고자 한다. 퍼즐 조각처럼 흩어진 텍스트를 나열하고, 그것의 원형을 찾는 과정을 통해 일생동안 일어나는 자아정립의 과정을 환기하도록 한다.
채나경 삶, 죽음, 그리고 경계
절벽 위의 한 발자국 내딛음이 삶과 죽음을 결정하듯. 지금 난 삶과 죽음, 그사이의 경계에서 사는 것 같다. 나의 경계엔 죽음이라는 커다란 벽이 존재하고, 이는 두려움을 준다. 오늘만큼은 벽을 허물고 경계를 넘어 죽음에 갇힌 이들을 구하고, 그 대가로 나의 두려움들을 죽음에게 줄 것이다.
김재윤, 신예은, 이예원, 지혜민 우리가 양지에 묻히게 된다면?
간단한 테스트를 통해 죽음을 사유하는 세 가지 유형 중 자신이 어디 속하는지 알고, 자신의 죽음관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참여자는 각 유형에 맞는 코멘트와 에센셜 오일을 추천받게 된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회피하는 눈 가리개 유형인 '바위 유형', 죽음에 집중하기보다는 현재에 충실하는 '돌 유형', 사후 세계에 대해 상상하는 '모래 유형'으로 나누어, 성향 차이에 따른 죽음관을 분류한다. 관객은 전통적 염원의 형태인 '돌 무덤(바위 무덤, 모래 무덤)'위로 아로마 향을 더하고, 마치 무언가를 염원하듯한 자세로 자신의 죽음관에 대해 고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는 죽음을 그 자체로 완연하게 바라보며, 삶과 죽음의 연결성과 복합적인 접점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그 고민의 결과는 설치작에 관객이 직접 개입하여 작품을 후각적, 심리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 통해 발현하게 된다.
박서현, 손예형, 채나경, 한재연 음성 사서함
작품 <음성사서함>은 익명의 인물들이 죽음 이후 남긴 음성 메시지들을 담고 있다. 그들의 마지막 한마디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가. 작품 속 발신인들의 이야기는 지금 살아있는 자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볼 질문을 던진다. 음성메세지와 발신인들이 생전에 남긴 물건들을 함께 감상하며 그들이 남긴 삶의 메시지를 되새기고자 한다.
공예은, 김정하, 박서영, 안효진, 인남홍 完
죽음으로 삶을 끝마치게 된다. 비로소 삶은 완성된다. '完'이 가지는 '완전하다', '완결 짓다'라는 의미는 어쩐지 죽음과 닮아있다. 삶의 완결. 그 연장선에는 장례식이 있다.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장례식의 형태를 제안한다. 선반 위에 놓여있는 요소들로 고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바라는 장례식은 어떠한가? 남겨진 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기억될 장례식. 이 또한 당신다웠으면 한다.
(출처=카메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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