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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예찬

원예찬

Won Yechan

대한민국

학력

  • 영남대학교 디자인 미술대학 트랜스아트과 졸업, 2021

주요 활동

  • 개인전
  • 滅種한 生命體를 대하는 姿勢 – 예술공간공동선, 대구광역시, 2023
  • 멸종한 생명체를 대하는 자세 범어 아트 스트리트, 대구광역시, 2022
  • 단체전
  • 에코토피아 Ecotopia – 신세계 갤러리, 대구광역시, 2023
  • 동촌조각축제 아양아트센터, 대구광역시, 2023
  • NO PAST NO FUTURE – 모하창작스튜디오, 울산광역시, 2022
  • 2022남매지 조각 축제 – 남매지 일대,  경산시, 2022
  • 2022 모하 창작스트디오 2기 프리뷰전 모하창작스튜디오, 울산광역시, 2022
  • WHIG – 소헌미술관, 대구광역시, 2022
  • Traces of life SPACE129, 대구광역시, 2022
  • RUNTOGETHER 참꽃갤러리, 대구광역시, 2021
  • Freer plant – 수창청춘맨숀, 대구광역시, 2020
  • 외 다수
  • 레지던시
  • 2022모하창작스튜디오– 울산광역시, 울산문화재단

수상

  • 유희적 파토스(Comical Pathos): 기술에 대한 이중적 열망과 현생인류에 대한 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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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예찬은 21세기 기술이 가진 밝은 면 보다는 어두운 면에 주목하고 기술 기반의 사회상을 비평하는 작품을 중심으로 창작해 왔다. 그는 뉴미디어 예술 창작 기술을 연마하고 이를 바탕으로 작품을 창작하면서 기술에 대한 더 큰 열망을 키워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원 작가는 자신이 습득한 기술, 그리고 더 나아가 고도의 기술이 초래한 부정적 사회상에 대해 창작을 통해 비판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는 기술에 의한 창작으로 기술이 초래한 부작용을 비판하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가 작가의 의식적 의도인지 불명확하지만, 나는 이를 ‘기술에 대한 이중적 열망(二重的 熱望)’이라 해석했다. 이러한 경향은 다른 뉴미디어 예술가들에게도 종종 발견된다. 그러나 원 작가 작품에서는 아직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독특한 코드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유희적 파토스(comical pathos)이다. 작품에 따라 그 정도와 뉘앙스가 조금씩 다르지만, 나는 그것을 이 시대상에 대한 ‘블랙 코미디 요소에 애잔함이 병치되는 묘한 느낌’이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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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년 창작한 작품 <Neo Sabotage>는 현재까지 그의 작품 중 이 유희적 파토스 모습을 잘 드러낸다. 작품 제목은 ‘새로운 태업(怠業)’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원 작가에 의하면 그는 이 작품에서 ‘기계에 의해 하락하는 인간 노동 가치’에 대해 풍자하고자 했다고 한다. 로봇팔(robot arm) 끝에는 소리를 출력하는 스피커가 달려있고, 그 밑에 투명한 비전해질용액이 담긴 비커(beaker)가 놓여있다. 스피커에서는 성우가 녹음한 세계인권선언, 대한민국헌법 기본권부분, 로봇3원칙이 재생되고 있다. 로봇팔은 비전해질용액이 담긴 비이커에 스피커를 담갔다 꺼냈다하는 동작을 반복한다. 용액 속에서 재생되는 음성은 용액 밖에서 재생될 때 될 때와는 사뭇 다른 변화를 만들어 낸다. 용액 밖에서는 정상적인 사람 소리가 재생되지만, 용액 속에서 소리는 마치 사람이 물에 빠져 내는 우물거리는 소리와 유사하거나 혹은 물고문할 때 내는 기괴한 목소리 효과를 연출한다. 재생되는 스피커 음성 내용의 맥락을 모르는 관객이 이 광경을 본다면, 기계(로봇팔)가 엉뚱한 행위를 하면서 이상한 소리를 발생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 관객은 소리 변화에 신기함과 흥미를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내용에 집중하노라면, 그것이 ‘인권중시’ 혹은 ‘인간존중’에 대한 것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흡사 인권을 주창하는 인간을 기계가 물고문하는 상상을 자극한다. 음향적으로 원래 내용이 정확히 전달되지 않도록 물리적으로 방해하고 희석함(정보 교란)으로써, 작가는 기계에 의한 ‘인간경시’, ‘인권침해’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여기서 우리 인간은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을 통해 자신이 봉착한 암담한 모습을 발견하면서, 유희적으로(comical) 인간 스스로에 대한 자기 연민(pathos)에 빠지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원 작가의 기술에 대한 이중적 열망은 무겁고 진지한 주제를 유희적인 파토스를 통해 흥미롭게 풍자한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다. 표현 측면에서도 녹음된 디지털 음성파일을 다양한 컴퓨터 음향효과로 변형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양하고 전기가 통하지 않는 비전해질용액에 스피커를 넣어 물리적으로 소리를 변형시켰다는 점에서 그의 기술적 독창성 역시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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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러한 유희적 파토스는 이번 그의 개인전 <멸종한 생명체를 대하는 자세>에서도 발견된다. 마치 우리 인류가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의 흔적을 모아 표본화하고 그들의 삶을 연구하는 것처럼, 원 작가는 우리 현생인류가 멸종한 이후, 인공지능과 생명공학 등의 과학기술로 인해 고도로 진화된 먼 미래 신인류가 현생인류의 흔적을 박제화하고 이들의 삶을 연구한다는 세계관과 서사구조를 설정하였다. 이것은 이전 작업, 일지 형태의 짧은 소설 <오메가 포인트>와 관련지을 수 있다. 이 소설 역시 사이버네틱스적인 다크한 미래상을 배경으로 인공지능과 결합한 미래인류의 삶을 보여주며 그들과 현생인류의 소통에 관한 이야기다. 이러한 설정 아래 원 작가는 마치 미래인류 입장에서 현생인류의 삶을 박제하는 작업을 이 전시에서 선보인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 현생인류에 대한 성찰과 존속을 ‘유희적으로’ 고민하고자 하였다. 그의 이러한 접근은 사실상 현생인류인 작가 본인이 미래인류로 ‘빙의’하여 자신(현생인류)을 박제하고 연구하는 블랙 코미디적 상황을 연출하며 이번 개인전에서도 유희적 파토스의 징후를 드러낸다. 먼저 원 작가는 미래인류가 현생인류의 자취 중 어떤 것을 표본할지 고민하면서, 유명 연설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이모지(emoji), 캐주얼 게임, 우스갯소리, 인간 욕망 등을 표본화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이 현생인류의 흔적들은 대부분 사물이거나 전자장치 속 콘텐츠의 형태이다. 이 흔적들은 마치 포르말린 병 속에 넣은 멸종생명체처럼 대부분 비전해질용액이 들어있는 유리병 속에 넣어 전시된다. 이러한 제작 양식은 이전 작업 <Neo Sabotage>에서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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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 개인전 작품 <Speech>는 16개의 유명 연설문이 음성으로 재생되는 장치를 박제하였다. 1935년 아돌프 히틀러의 쿠르프 공장 위문 연설부터 2018년 여배우 엠마 왓슨의 UN양성평등 연설, 그리고 같은 해 방탄소년단의 UN연설 등 정치사회 및 문화예술적으로 중요한 연설들을 박제하여 재생한다. 일정 주기 동안 8개의 연설이 동시에 먼저 재생되고 교대로 나머지 8개 연설이 동시 재생됨으로써 현생인류의 아우성을 재현한다. 연설주제는 전쟁선언, 평화회복, 인권향상, 양성평등, 기술낙관 등 현생인류의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모습을 담은 내용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긍정주제들이 현생인류의 부정성 극복이란 점에서, 사실상 연설주제는 인류의 어두운 그림자를 직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원 작가는 미래인류가 현생인류의 암울한 국면을 살펴보는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멸종된 인류를 대하는 자세 중 하나인 것이다.
  • 작품 <Emoji>는 현생인류들이 사용하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8개 이모지들을 모은 감정 표본집이다. 곤충표본 같은 나무틀 속에 3디 프린팅으로 제작한 이모지 아이콘과 그것을 소형 LCD 디스플레이에 디지털 도트 형태로 표현하는 전자장치를 넣었다. 미래인류가 주목한 현생인류의 감정은, 그 감정의 실체가 아닌, 실체는 이미 휘발되어 사라지고 결국은 소셜 미디어에 데이터로만 남은 각종 이모지 아이콘인 것이다. 귀엽게 표본된 이모지들을 보며 관객은 순간 유쾌할 수 있으나, 타인의 페이스북 글 밑에 데이터로 축적된 이모지처럼 건조하게 박제된 감정 아이콘들로 인해 묘한 자기 연민에 빠져든다.
  • 이러한 그의 유희적 파토스 경향은 작품 <First Game>과 작품 <Joke Manufacturing Machine>에서도 발견된다. 원 작가는 <First Game>은 1972년 미국 아타리(Atari)가 발매한 비디오 게임 퐁(Pong)을 박제했다(오리지널 퐁 게임을 박제한 것이 아니라 작가가 그것을 모방하여 만든 퐁 게임을 박제한 것). 미래인류는 왜 현생인류의 ‘유희적 존재성’에 주목하고 게임이라는 대표적인 유희적 대상(playful objects)을 박제화한 것일까? 게임이란 플레이어가 존재하고 그가 그것을 가지고 놀아야 존재근거가 충족된다. 이 전시의 세계관에서는 이것을 가지고 놀던 현생인류는 이미 사라지고 존재하지 않는다. 작품 <Joke Manufacturing Machine>도 유사하다. 이것은 다양한 유희문답을 표출하는 유희적 오브제이다. 저장된 다양한 우스개 문답이 소형 LCD에 표출되면서 인간으로 하여금 언어유희를 즐기게 하는 장치다. 예를 들어, “What do sea monsters eat? Fish and Ships.”와 같은 문답이 표시된다. 나는 이 작품에서 “미래인류의 인공지능은 현생인류처럼 언어유희를 즐길 수 있는 의지와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가?”와 “놀이하는 인간(homo ludens)으로서 현생인류가 멸종된 먼 미래에 이러한 언어유희는 미래인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미래인류의 박물관(?)에 박제되어 유물로 남겨진 퐁 게임과 언어유희. 이런 현생인류의 유희는 너무나 단순해서 고도로 진화된 미래인류에게는 유희적 대상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어쩌면 미래인류는 감정이 제거되어 유희 개념이 없어 이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나는 이 두 작품에서 유희적 대상이 더 이상 유희를 산출하지 못하는 ‘웃픈’ 미래 상황을 바라본다. 이것은 현생인류인 우리가 느끼는 우리 미래에 대한 또 다른 유희적 비애에 해당하며, 이러한 다양한 유희적 파토스가 현생인류인 우리가 미래에 멸종된 우리 자신을 대하는 ‘자세’이지 않을까?
  • 이 준 (뉴미디어 예술가, 공학박사)
  • 작가노트
  • 기술 발달의 가속화가 인간이 만들어낸 시스템, 관점과 충돌하는 지점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하고 있다. 디지털 테그놀로지와 인간이 상호작용 함으로써 일어나는 헤프닝들을 바라보며, 이에서 내가는 느낀 허무함 또는 괴리감을 작업으로써 표현하고 있다. 또한 더 나아가 디스토피아적 미래의 규제 없는 개발로 등장 하는 포스트 휴먼 등을 개인적인 감성을 담아 풀어나가고자 한다.
  • 최근 작품은 생성적 적대 신경망, 피지컬 컴퓨팅, 사운드 등 뉴미디어적 요소와 조각, 설치 등의 기존의 예술 매체의 병합을 통해 이어나가고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와 우리가 믿는 가치의 존속에 대해 질문하고자 한다.

대표 작품

작품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