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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아트 포 랩

노태호《레푸기움; 평안의 기술》

종료

전시 기간 2023.07.03 – 2023.07.16

기획전
노태호《레푸기움; 평안의 기술》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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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 시간
11:00 - 19:00
휴관일
-
관람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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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양시 동안구 신기대로33번길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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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소개

레푸기움 : 무위(無爲)의 영토

글 | 박하은 아트 포 랩 디렉터

아트 포 랩(Art For Lab.)은 7월의 첫 전시로 안양시와 안양문화예술재단이 주최 및 후원하는 ‘2023 안양 문화예술인 지원사업’의 <신진예술가 지원>에 선정된 노태호 작가의 개인전 《레푸기움; 평안의 기술》을 오는 7월 3일(월)부터 7월 16일(일)까지 개최한다.

노태호(b.1988)는 조소를 기반으로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며 도시와 자연, 생의 유한성을 탐구하는 자연미술 작가이다. 그는 한국자연미술가협회 ‘야투’가 주최하는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및 유수의 자연미술 전시에 참여하며 자연 속에 머무르는 예술 작업을 전개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지금까지 레푸기움(Refugium)을 주제로 작업해 온 신작을 선보이며, 불안에 대처하는 작가의 태도를 통해 이를 경유하는 관람자들이 저마다의 평안의 지점을 찾아 일상과 연결해보기를 제안한다.

무위(無爲) : 썩는 것과 썩지 않는 것 Natural State, Without Intention

자연미술이라 일컬어지는 노태호의 작업 방식은 인간 존재 및 생명의 유한함 앞에서 예술을 삶 속의 적극적인 실천이자 영육 간의 관계로 여기는 작가의 삶의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인간중심적이고 이분법적인 사고를 비판하며 ‘환경 보호’의 측면에서 관심을 촉구하는 서구의 ‘생태주의’ 및 ‘생태미술(Ecological Art)과는 달리, ‘자연미술(Nature Art)’이 유래한 동아시아의 자연관은 노자의 도덕경이 주지하듯 ‘무위(無爲)’의 개념을 내재⑴하고 있다. 이때 무위란 인위적인 것을 억지로 하지 않음을 뜻하며, 자연에 간섭하지 않고 순리에 부응하는 자연스러운 행위를 일컫는다. 인간과 자연을 이분법적 잣대로 구분하지 않되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이러한 자연관은 노태호의 작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자연스러움이 진실로 작동되는 시간이 곧 ‘사라짐’ 속에 있다고 믿는다. 자연미술 속 유일하게 남겨진 작품 혹은 결과물들은 그것이 설치된 현장에서 그대로 부패하여 흔적 혹은 기록 사진으로만 남는다. 보관이나 소장을 목적으로 하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비물질성이 강조되는 이러한 작업들은 결과보다 창작의 실현 과정에 초점을 두고 있다.

노태호에게 ‘레푸기움’이란 체계적이고 반복적인 일상 사이에 균열을 내며 숨 쉴 곳을 내어주는 안정의 공간이다. 콘크리트 토대 위에 흙기둥을 쌓아 올린 작품 <이끼와 유목 사이>(2020-2023)는 작가가 여러 국가를 이동하며 겪은 유목적인 삶의 태도를 은유한다. 강한 생명력이 있지만 자신의 터인 자연을 벗어나면 빠르게 죽어가는 ‘이끼’와, 본래 있던 곳을 떠나 해류를 떠돌며 생명을 잃은 지 오래이지만 썩지 않는 상태로 죽음 그 너머를 지표하고 있는 ‘유목’이라는 대조적인 물질 사이에서 작가는 흙기둥을 쌓아올린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사각형의 주춧돌 위로 흙기둥을 똑바로 세워보려고 하는 행위는 작가에게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야 할 커리어 혹은 인생의 성공을 상징한다. 하지만 행복과 안정은 공들인 탑과 반드시 인과관계를 형성하지는 않는다. 전시가 진행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쌓아 올렸던 흙이 마르면서 점차적으로 탈각이 시작되고, 가장 위에 있던 이끼들이 무너져 내리면서 일부가 드러나게 된다. 작품이 변형되는 이러한 과정은 작가에게 견고한 시스템의 빈틈이자 예외적인 공간으로 발생하는 자유와 해방감을 상징하는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가 발견되는 순간을 의미한다.⑵

인생에서 처음으로 타인이 개입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비밀을 소유했던 순간을 촉각, 후각, 청각 등 공감각적인 형태로 재현한 작업 <옷장 속 럼주>(2022)는 작가의 유년시절 역사가 담긴 레푸기움의 형태를 보여주기 위한 작업이다. 타지에서 낯선 이방인으로 지내던 시절을 담고 있는 본 작업의 주 매체인 ‘럼’은 ‘유목’의 성질과도 중첩되는데, 화학적 과정을 거쳐 썩지 않게 된 술과 무기물이 된 나무 모두 영원성을 내포함과 동시에 불안과 대립하며 위태로운 위상에 처한 인간을 지키는 방어기제의 지표로 작동한다. 두 작업이 내포한 공간성 및 대립되는 두 속성 사이에서 발생하는 경계성 또는 중간 지대는 작가의 불안과 평안을 거울처럼 비추는 자화상의 성격을 지니며⑶, 완결성을 갖기보다 관람자의 행위와 시간의 개입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순리에 따르고자 하는 자연미술을 표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평안의 기술로서의 미학 Esthetics as Refugium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감각해내는 근원적인 형태에 대한 탐구를 거듭하면서, 노태호는 문화를 구성하는 미학의 속성으로 ‘평안’이 깊게 관련됨을 발견했다. 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이 47세에 도시를 떠나 가꾸고 머물렀던 원시적인 형태의 ‘돌집’에서 영감을 받은 작가는, 이를 ‘레푸기움(Refugium)’ 개념과 접목시켜 평안의 기술로 전유하고자 했다. 돌집은 칼 융에게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과 영혼에 더욱 몰입하게 해준 장소이며, 레푸기움은 라틴어로 피난처 혹은 안식처라는 뜻으로 본래 빙하기를 이겨내기 위해 동식물이 숨어서 생존했던 곳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작가는 이러한 두 개념을 결합하여 인생에서 고난을 마주하더라도 자신만의 안식처에서 잠시 몸을 숨겨 웅크리고 기다리면 다시 현실을 직시하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는 하나의 가설을 세웠다. 또한 이러한 과정들을 의식적으로 인지할 수 있게 된다면 사람들이 저마다의 평안의 기술을 습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 다양한 참여자들과 함께 <이끼 정원>이라는 제목의 워크숍을 진행해왔는데, 이때 참여자들이 제작한 이끼 정원으로부터 도출한 도식은 ‘평안의 기술‘로서 전시에 등장한다.

전시장 입구에 자리한 <이끼와 유목 사이> 및 <옷장 속 럼주> 설치 작업이 작가 개인의 감정과 역사가 담겨 있는 레푸기움의 형태를 보여준다면, <이끼 정원>(2023) 속 도식화 작업은 작가가 진행했던 워크숍을 통해 도출한 레푸기움, 즉 평안의 관계망을 펼쳐놓는다. 노태호의 워크숍 <이끼 정원>은 자신의 관점을 관철시키기 위해 무언가를 가르치거나 얻어내기 위해 결과를 통제하는 결과주의적 태도와 거리를 두며 진행된다.⑷ 보통의 예술 창작과 전시가 진행되는 방식에서는 작가가 작품을 제작한 후 전시를 통해 대중에 공개하면, 워크숍 등의 참여 프로그램은 관람자의 체험을 돕기 위한 부산물로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본 전시에서 작가는 익숙한 기존의 방식을 역행하며 결과 중심적인 전시의 형식으로부터 일탈을 시도한다. 그는 워크숍을 하나의 리서치 과정으로 두고 그 과정에서 수집한 다양한 레푸기움의 형태를 전시에 끌어들이고, 작품은 현장에서 제작 및 설치되어 시간이 지날수록 본래의 형태로부터 변화하며 현장에서 마무리된다. <이끼 정원> 속 거미줄(web)처럼 도식화된 형태로 전시에 드러나는 레푸기움의 다양한 분류와 군집들의 네트워크는 관람자가 세계 속 자신의 평안의 기술은 어디쯤에 위치하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평안의 지도’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동시성의 시대, 병렬의 시대, 가까운 것과 먼 것의 시대, 인접성의 시대, 분산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세계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전하는 거대한 생명체로서보다는, 여러 지점을 연결하고 그 실타래를 교차시키는 네트워크로서 경험하는 시기에 있다.⑸

생(生)과 사(死)의 한복판에서 유한한 운명을 지닌 인간이 느낄 수 있는 행복과 안정의 근원을 좇는 질문의 끝에, 작가는 자신을 안전하게 만들었던 것이 아름다움으로 치환된다는 사회문화적 경험으로부터 방어기제의 조율을 통한 미학적 기술을 발명했다. <이끼 정원> 속 특별한 인과 없이 우연적으로 배치된 인위적인 선들의 교차와 그로 발생하는 꼭짓점들 외에도, 세상에 존재하고 있을 더 많은 점과 선들은 작가가 아직 찾지 못한 누군가의 평안의 자리로서 공백으로 남겨져있다. 작가는 현실 속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의 맹목적 추구를 제안하는 대신, 자신이 찾아낸 평안의 배치를 불안해하고 걱정하며 우는 마음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그러모아 보여주고자 한다. 당장은 자신의 레푸기움을 찾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평안의 지도 어딘가에 반드시 당신의 자리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최선을 다해 알려주고자 하는 작가의 세계관이 전시라는 전서구를 통해 관람자에게 전달된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의 수만큼 존재하는 각각의 방어기제는 곧 평안을 찾는 저마다의 미학이 되고, 그러한 미학은 평안의 기술로 번역되어 서로 환원되거나 중첩되지 않은 채 촘촘하게 짜여진 그물처럼 우리가 사는 세계의 풍경을 재구성한다.⑹

⑴ 전혜숙, 「‘바깥미술회’와 ‘야투’ 그룹의 자연 미술에 나타난 생태주의적 특성」, 『미술사학보』, 51권 (2018), p. 296. ⑵ 미셸 푸코, 『헤테로토피아』, 이상길(역), 서울:문학과지성사, 2014, p. 14. ⑶ 앞의 책, p. 47. ⑷ 메릴린 스트래선, 『부분적인 연결들 : 문명 너머의 사고를 찾아서』, 차은정(역), 파주:오월의봄, 2019, p. 37. ⑸ 미셸 푸코, 『헤테로토피아』, 이상길(역), 서울:문학과지성사, 2014, p. 41. ⑹ 앞의 책, p. 46.

(제공 = 아트 포 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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