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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홍연경민현대미술관

너와 상관 없는 일

종료

전시 기간 2019.09.02 – 2019.09.28

회화
너와 상관 없는 일 포스터

종료된 전시입니다. 아래 관람 정보는 전시 당시 기준입니다.

관람 시간
10:00 - 18:00
휴관일
연중무휴
관람료
정보 확인 필요
주소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2동 490 · 신도아크라티움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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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소개

다른 나, 같은 너 : 기억의 내삽(內揷)과 기록의 외삽(外揷)

안진국(미술비평)

어제의 나는 오늘의 타자이다. 인체의 세포는 매일 100억 개가 죽고 다시 생성되어 나를 구성한다. 오늘의 나는 적어도 100억 개의 새로운 세포로 대체된 어제와 다른 나이다. 기억은 어떤가? 하루마다 새로운 기억들이 축적되고, 이전의 기억 중 일부는 무의식 밑으로 가라앉는다. 그렇기에 아무리 기록을 남겨도 기억과 완전한 동기화를 이루지 못한다. 기록은 단지 기억의 타이틀로만 남는다. 방금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엇갈리고, 기록은 끊임없이 기억에서 미끄러진다.

홍정우는 이러한 인간의 특성을 ‘낙서’라는 자신의 추상적 작업 방식을 통해 드러낸다. 작가에게 낙서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연결하고(시간성), 사회적인 ‘나’와 ‘너’를 연결하는(관계성) 구조적 행위이다. 이것은 작가가 철학자 칼 융(Carl Jung)의 ‘개인상징’과 ‘사회상징’을 연구하면서 정립한 인간 내면의 3단계 작동 방식에서 연유한다. 작가의 관점을 요약하면, 먼저, 인간 내면은 사회화를 통해 주관적 정보를 객관화시키는 상호 전환의 언어를 갖게 된 자아가 자연현상이나 사회현상을 객관적(사회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후 객관화한 정보를 주관적 방식으로 해석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고, 그것을 외부로 발화할 때는 다시 현상적 언어시스템을 사용하여 객관적 대상으로 전환하게 된다(작가노트 요약, 2018 ?뿌연풍경?). 다시 말해서 인간 내면은 객관화 → 주관화 → 객관화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여기서 객관화는 사회적 약속(언어시스템)을, 주관화는 개인의 정신 작용을 의미한다. 홍정우는 이 과정에서 2단계인 내면의 주관적 해석을 ‘차연’(differance)1)시킨다. 이것이 그의 ‘낙서’ 표현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지극히 일상적인 경험을 글로 기록하는 것은 현상을 객관화(1단계)하는 것이며, 그것을 통해 ‘차이’가 있는 내적 해석(2단계)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 현상적 언어시스템으로 객관화(3단계)하지 않고 그 자체를 표출하는 것, 즉 내적 해석(2단계)을 ‘지연’된 상태로 드러내는 것이 바로 홍정우의 시각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표출은 객관적 해석의 난맥을 겪게 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작업은 마치 의식(conscious)과 무의식(unconscious)의 틈에 있는 전(前)의식(preconscious)의 차원에 있는 것과 같아서 작업에 의식의 단서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또한, 기록(1단계)이 단서가 되기도 한다. 그의 작업이 이해의 범위에 있는 것은 이러한 내면 과정 때문이리라.

그의 작업 여정은 내면의 작동방식을 깊이 탐색하는 발걸음이다. 이번 전시는 홍정우의 탐색이 질적으로 다른 층위로 올라섰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전환점처럼 보인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작업을 압축적 언어로 다시 서술하고, 판화 기법을 활용함으로써 내면의 작동방식에 대해 입체적으로 사유하도록 이끌어간다. 사실 기존의 작업이 객관화된 도출(3단계)에 도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가 작품에 제목을 붙이는 것은 결과적으로 지연된 주관적 해석을 현상적 언어시스템으로 객관화하는 내면 작동의 마지막 단계를 실행하는 것이었다. 이는 타자의 이해를 위한 장치로 내적 해석(2단계)을 삼자적 입장에서 다시 바라보는 행위다. 하지만 단순히 제목을 부여하는 것과 작업에 관해 다시 서술하는 것은 그 강도에서 차이가 있다. 작업에 관한 재서술은 삼자적 시각이 더 강화된 것으로 사회적 언어가 작동하는 방식을 강하게 각인시킨다. 또한, 인간 내면의 작동방식이 지닌 시간성을 표면화시키는 역할도 한다. 작가의 작업은 (내면의 작동방식과 동일하게) ‘현상 인식 및 기록’(1단계: 객관) → ‘낙서 표현’(2단계: 주관) → ‘제목 도출’(3단계: 객관)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그런데 작업에 관한 재서술은 시간이 지나 생각의 패턴이 바뀐 상태에서 ‘재확인’(4단계: 객관화 강화)이라는 새로운 단계를 덧붙이는 행위이다. 이는 다른 입장으로 새롭게 작업을 정의하는 상황을 만든다. ‘과거’의 나를 ‘현재’의 내가 타자적 입장에서 재조직하는 것이다. 이것은 작업 과정이 지닌 시간성을 드러낼 뿐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입장차를 표면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시간성과 그로 인한 타자적 입장은 특히 판화 기법을 활용함으로써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홍정우는 자신의 작업에서 판화 기법이 “시간차를 가진 타자적 우연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작가 인터뷰 중). 판화는 화면에 직접 표현하는 회화와 달리 제판(製版)과 인출(印出) 사이에 적지 않은 시간적 공간이 존재한다. 또한, 공판화를 제외한 판화는 좌우가 반대로 찍히고, 찍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우연한 표현이 등장한다.-여기서 좌우가 반대로 찍힘은 표출 방식을 다른 입장(타자적 입장)으로 작업 과정을 바라보게 하는 장치가 된다.-이렇듯 홍정우는 제판과 인출의 시간차(“시간차를 가진”), 좌우의 뒤집힘(“타자적”), 우연한 표현(“우연성”)을 자신의 작업세계에 녹여낸다.

더불어 판화 기법이 지닌 복제성은 사회적 약속이나 집단 무의식의 상징으로 읽어낼 수 있다. 작가는 콜라그래프(collagraph)나 목판화, 스텐실 기법을 즉흥적으로 혼합한 모노프린트(monoprint) 판화 형식에 직접적인 드로잉(낙서)을 결합하여 하나하나 다른 작품을 완성한다. 즉 엄밀한 의미에서 판화가 아니라, 판화 기법을 활용한 회화이다. 이때 판화 본판을 재차 사용하게 되는데, 여러 본판들의 구성을 달리하면서 직접적인 드로잉과 결합하여 각각 다른 형태의 작품을 완성되더라도, 본판을 재차 사용함에 따라 그 구성의 일부는 동일성을 띨 수밖에 없다. 이것은 개별 주체가 사회화로 인해 공동의 객관적 언어(사회적 약속)를 활용하거나, 공통된 경험에 의해 형성된 사유(집단 무의식)를 발현하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작가가 활용한 판화의 복제성은 사회적인 ‘나’와 ‘너’의 연결성을 드러내는 한 양식으로 읽을 수 있다. 결국 작가가 이번 전시 제목으로 제시한 ‘너와는 상관없는 일’은 반어법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객관화(기록) → 주관화(낙서) → 객관화(제목, 재서술)로 이어지는 내면의 작동방식 자체에는 언제나 타자적 입장과 시선이 들어 있기 마련이다. 작가는 자아, 그리고 자아와 연결된 타자, 자아와 타자가 구성한 사회가 시간성과 작용하는 방식을 이번 전시를 통해 탐색하고 있다. 과연 그 탐색의 층위와 범위가 어떻게 입체화되고 어디까지 확장될까? 벌써부터 홍정우의 내일의 작업이 궁금해진다.

전시장 정보

홍연경민현대미술관

공간 운영
10:00 – 18:00
정기 휴관
연중무휴
전시장 문의
031-87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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