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시장 온그라운드

작가를 찾는 등장인물

종료

전시 기간 2019.11.15 – 2019.11.28

회화
작가를 찾는 등장인물 포스터

종료된 전시입니다. 아래 관람 정보는 전시 당시 기준입니다.

관람 시간
11:00 - 18:00
휴관일
월요일, 일요일
관람료
정보 확인 필요
주소
서울 종로구 창성동 122-12
지도 보기
길찾기 (새 창)

전시 소개

여전히 유효한, 정적(靜寂)으로 난 길 따르기

2008년 황선숙은 헤이리 개인전에서 인상적인 '수묵-애니메이션'을 보여주었다. 그의 '수묵-애니메이션' 또는 '애니메이션 수묵'이 드물게도 '영웅적인 한 점'이나 '기념비적인 한 컷'의 신화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그때 황선숙은 '기념비적 회화, 순수미술의 소영웅주의, 그 흥분된 시론(時論)' 앞에서 머뭇거리는 부류였고, 자신의 회화를 의미의 보물창고로 주장하도록 훈련된 예술가들의 대열에 서기를 주저하는 예술가로 보였다. 작가 자신의 표현에 의하면, 그것이 그가 그림을 놓아버린 자리였고, 애니메이션으로 나아간 자리였다. '영웅적인 한 점이나 '기념비적인 한 컷'의 신화를 신뢰하지 않는 그 자리에서 그의 수묵화가 그 기초 단위가 되는 애니메이션이 잉태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의 수묵·영상전'이라는 부제를 달았던 헤이리의 전시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그는 다시 회화로, 드로잉으로 돌아온 것일까. 이번 전시는 대체로 작은 크기의 모필이나 목탄 드로잉으로 채워질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이 잠정적인 귀향(歸鄕)에 대해 '움직임은 시간이지만 정적은 영원'이라는,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이 곧 영원을 체험하는 것이라는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의 말로 대신 한다. 이를테면 그는 '정지'를 등지고 '역동'을 찾아 나섰다가, 다시 정지 하지만 이번에는 그것의 속살인 '정적(靜寂)'으로 돌아온다. 움직임에 이끌리었던 경험들이 오히려 움직이지 않는 것에 대한 깨달음으로 되돌아온 셈이다. 이 정적이야말로 그가 수묵 또는 수묵의 미학을 떠나지 않는 이유이다. 수묵은 그에게 하나의 상징, "보이지 않는 세계와 단절되어 있는 의식의 세계에서 빠져나가는 네거티브의 통로"와도 같은 것이다.

조금도 기념비적이지도 않고 감정의 격앙이나 폭발과도 크게 관련이 없는 황선숙의 작은 드로잉들의 미학적 단서는 그것들을 그린 이의 물질적 충만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세태에 편승하지 않는 태도와 긴밀히 결부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2008년 3천 장이 넘는 수묵 드로잉으로 된 그의 4분짜리 수묵-에니메이션을 보았을 때, 내가 언뜻 펠릭스 가타리(Felix Guattari)를 환기해 냈던 것도 정확하게 이런 맥락이었다. 그-가타리-의 바른 지적대로 '온갖 유형의 파시즘이 이미 우리 안의 실핏줄을 타고 흐르는 상태'에서 우리는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을까. 억압으로서의 욕망과 균형의 상실, 분노와 증오의 폭발에 휩쓸려 내려가지 않기 위해서는? 황선숙의 드로잉들은 과거와 꿈으로부터 취한 소량의 것들로 된 소량 이상의 세계를 보여준다. 영원은 그것의 정적을 깨지 않을 만큼의, 아주 소량의 것들 이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본질과의 접촉', '이데아와의 소통' 같은 거창한 선언이나 명분은 대체로 그 자체로 세속적이다. 반면 이 세계에서 이미지들은 시의적 의미의 세련미와는 거리를 유지하는, 꾸밈이라곤 없는 모필과 목탄의 단색조의 어두컴컴한 톤으로부터, 피안의 불확실한 출처로부터 반쯤만 어렴풋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충분하다. 등장인물들의 번역 불가능한 언어는 그 미지의 곳으로부터 나지막하게 하지만 꾸준히 들려온다. 그들은 미명(未明) 아래서 서로 만나거나 헤어진다. 종종 호수와 그것을 가르는 한 척의 배가 등장하지만, 호수도 노를 짓는 인물도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침묵하는 어둠에 압도된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지만, 비언어적 소통이 오히려 증폭된다.

황선숙의 세계는 현실과 꿈, 과거와 현재, 의식과 무의식, 재현과 상징이 혼재해 있다. 그리고 그것들의 시적 은유로 가득 차 있거나 그 자체다. 흥미로운 것은 수묵의 미학에서 도래한 흑백의 단색조 드로잉에 그 많은 것들을 누락 없이 담아내는 방식이다. 요약하자면 그것은 정적의 시각적 버전인 어둠을 길로 삼는 것이다. 스스로 빛을 자처하는 철없는 과학기술의 도움이나 실증주의의 안내는 내면으로 향하는 이 여정의 길잡이로선 매우 부적절하다. 심상용

"Black and white are colors of the Beyond" (요한 야콥 바흐오펜) 보이지 않는 세계와 단절되어 있는 의식의 세계에서 네거티브의 통로를 흑백의 세계에서 구하려 했던 것일까. 수묵은 내게 하나의 상징이었는지 모르겠다. 저 너머 피안의 원형과도 같은 불가능한 세계의 이끌림, 창조적 빈 공간으로써 개념의 차용이나 형식의 가시화로 표현되기 보다는 매체 자체와 내적으로 체화된 관계와 태도에 가까웠다. 수묵이라는 공간과 시간의 유기적 횡단으로 그동안 실험영화, 영상 속에서 오히려 수묵적 특성과 흔적을 더욱 드러내었는지 모르겠다. 수묵을 다루길 거부하면서 등장해오던 수묵은 작가 피란델로의 말처럼 그들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었던 것일까. 수묵 없는 수묵. 다루길 거부하면서 드러났던 여정의 수묵이란 내게 무엇인가. 어떠한 작가를 찾고 있는가?

'어느 작가가 자신의 상상력 속에서 등장인물이 어떻게, 왜 태어났는지를 말할 수 있겠는가?....어느 누구도 등장인물에게 괜히 거저 생명을 주지는 않는다. 내 영혼의 창조물인 그 여섯명은 내것이 아닌 바로 그들 자신의 인생을 이미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내 힘으로는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그들의 인생을 이미 살고 있었다...그리고 자신들의 생명을 얻기 위해 내게 대항해 팽팽히 유지하고 있던 싸움에서, 이미 혼자 스스로 움직이고 말할 수 있는 등장인물들 즉 극의 등장인물들이 되어 있었다.' 희곡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 작가 서문 中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에서 피란델로는 등장인물들을 다루길 거부하면서 한편으론 그들을 표현해내기 위해 작가로부터 거부당한 상태로 그래서 다른 작가를 찾고 있는 상태로 그들을 불러 모았고 실현시켰다. 인생은 기교를 통해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작가는 그들 자체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드라마를 거부한 것이라고 말한다.

황선숙

전시장 정보

온그라운드

공간 운영
10:00 – 19:00
정기 휴관
월요일, 일요일
전시장 문의
02-720-8260

전시별 관람 시간·장소는 상단 관람 안내를 확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