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센터 화이트블럭] 박미례 개인전 ≪해산첩(海山帖)≫ 전시 포스터](/_next/image?url=https%3A%2F%2Fmedia.art-map.co.kr%2Fart-map%2Fpublic%2Fupload%2F2026%2F10%2Fexhibition%2Fe651578dd7d7bcf0081ddeb714c2ddcd.png&w=3840&q=75)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박미례 개인전 ≪해산첩(海山帖)≫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전시 기간 2026.10.02 — 11.29 · 경기도 파주시
전시 기간 2021.06.02 – 2021.06.30
설치미술
종료된 전시입니다. 아래 관람 정보는 전시 당시 기준입니다.
공식 홈페이지 바로가기 (새 창)탈피 molting
이순영
2017년 개인전 이후 공백기 동안 단체전을 하면서 기억에 관한 고찰이란 주제로 진행되는 작업이 조금씩 달라졌다. 기억을 다루는 기본 설정은 차이가 없지만 내용과 작업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 이전의 인형 작업은 낱개의 기억들이 모여 기억 안에 응축된 감정을 가시화 한 것이라면 이번 개인전에서는 그 독한 감정들이 빠져나간 기억의 탈피를 형상화 한 것들이다.
모호할 수 있는 형상들이 무심히 지나가는 바람에 흔들리다 공간 내 제 영역에서 맴돌고 있다. 마치 스스로 가둔 프레임을 떨쳐내지 못하는 것처럼. 미동의 형상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풀리지 않은 의문처럼 억눌려 내재된 희미한 기억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도 해 지난 시간들을 들추어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는 단초의 역할을 한다. 비록 독한 감정들은 휘발되었지만 기억의 흔적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기에 남겨진 허물들에서 문득 차오르는 감정을 더듬을 수도 있겠다. 기억의 정수가 빠져나간 공허한 형상들은 바람과 공기의 흐름대로 미동하고 있다. 기억을 비우고 흐름을 따라 부유하는 껍데기 같은 형상들이, 꽉 채우고 그것을 애써 지키려고 아등바등 대던 시절을 비웃듯 유유자적 풍경을 이룬다. 무엇이라 지칭할 수 없는 형태의 자율성은 경계 없이 자유롭다.
이제까지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애써 모은 것들을 하나씩 비우니 마치 탈피한 허물처럼 가벼워졌다. 끌어모은 독한 감정들이 적재된 저수지를 비우고 투명한 샘물을 채운 기분이다. 감정들에 파묻혀 벗어나지 못하고 구속되었던 시간들은 회상하기도 버겁다. 그 순간들을 뒤적여 안쓰럽게 바라보고 쓰다듬으며 달래기엔 시간이 아깝다. 알맹이가 빠져나간 껍데기처럼 비우고 비워내 단조로운 일상이고 싶다. 언제 삶의 마지막을 대면할지 자신할 수 없는데 굳이 반기를 들 듯 격한 감정들에 치여 살기엔 노쇠했고 그런 감정들의 끝자락엔 늘 후회가 따랐다. 복잡함을 벗어내니 의외로 단순한 일상이 마음의 평온을 더한다. 애써 무엇을 바꾸려 했던 부질없는 행동들이 얼마나 무의미했던가. 무엇보다 현재의 자신을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먼저이고 그러기 위해 묵은 감정들의 무게를 털어내야 내딛는 걸음도 가벼울 것이다.
이전 작업의 인형은 하나하나가 매 순간 생성되는 기억의 단위였지만 이번 전시의 재료인 비닐 랩은 기억의 파편들로 결집해 층위를 이루고 새로운 기억으로 형상화한다. 인형 작업의 재료인 갖가지 천들은 온도가 감지되는 따뜻함을 내포했지만 비닐 랩은 차갑고 투명하다. 빛이 투과되는 지경을 넘어 겹을 이루는 반복으로 두께가 늘어날수록 점점 불투명 해진다. 모든 기억은 매 순간 발생하지만 투명하게 기억되는 처음 순간이 지나면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반복해 기억하는 학습을 한다면 각인되어 오래갈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시간이 지나거나 기억의 필요성이 간절하지 않다면 잊히기 마련이다. 이런 기억들은 파편적으로 저장되어 부유하고 있다가 어떤 계기로 소환되기도 하고 아예 삭제되기도 한다. 기억의 파편들을 모아 형태를 만들었지만 비워진 내부를 의미로 채우지 않았다. 의미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이미 검증되었거나 사전에 등재된 단어들로 한계를 이루고 있기에 해석이 쉽지 않은 기억들의 형상에 부여하기에는 부적합하다.
투명하게 감싸 공기와의 접촉을 막고 대상을 보호하기 위해 주로 사용되는 비닐 랩은 기억의 작용과 다르지 않다. 랩이 대상을 감싸 변질을 막아내듯 우리들 대부분 기억의 본질이 오염되지 않게 보호하고 오래 남을 수 있도록 애쓰지만 결국 반복 학습 없이는 소멸되거나 파편화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불순물처럼 겉도는 이런 조각난 기억들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자연스럽게 희미해지거나 회복이 어려운 감정의 깊은 상처로 의도적으로 삭제될 것들이다. 어쩌지 못하는 그것들의 감정을 비우고 의도를 배제한 형태로 만들었다. 파편화되거나 삭제된 기억의 유실을 대체하는 능동적인 방법으로 조금은 인위적이라 할 수 있지만, 만들어지는 것만 기억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도 기억의 범위에 들어가며 그 결과로서 감정이 탈피한 새로운 형상들을 만들었다. 이것은 또한 새로운 기억의 출연이라 하겠지만 접근이 부담 없이 가볍다. 삶의 무게를 채우지 않고 비우고 있기에.
(출처= 아트린 뮤지움)
shape1 · PVC랩 · 가변설치 · 2021 (출처= 아트린 뮤지움) · shape1
shape2 · PVC랩 · 가변설치 · 2021 (출처= 아트린 뮤지움) · shape2
shape6 · PVC랩 · 60 x 34cm · 2021 (출처= 아트린 뮤지움) · shape6
Link · 셔츠 6장, 뜨개 실 · 가변설치 · 2020 (출처= 아트린 뮤지움) · Link